[일제강점기 역사소설] 쾌남 봉창! #5

5. 일본행

 

. 오늘은 다행히 고문이 없는 날이야.

사실은 말야. 저번처럼 더 이상 때리면 아무 말 안하겠다고 내가 막 나가니까 정말 덜 때리더라고. 그래도 가끔씩 천정에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나한테는 별로 소용이 없어.

 

뭐 더 이상 아는 게 있어야 말을 하지.

난 천성이 말야. 있는 그대로 밖에 말을 못해. 그러니 지어낼 거짓말도 없어.

나를 빨래 짜듯 짜봐야 나오는 건 오줌, 똥하고 피 밖에 없다고.

 

나중에 일본 놈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맘대로 지어내면 어떻하냐고?

뭐 그럴 수도 있겠지. 어차피 여긴 일본 경찰서 안이고 지금은 온통 왜놈 세상이니까. 그러니 놈들이 내 진술을 슬쩍 바꿔치기한들 뭐 거기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. 그 때쯤이면 이미 난 사형을 받고 죽었을 테니까.

이런 건 나중에 뜻있는 사람들이 좀 자세히 알아봐 주시고, ?

 

여튼 철도국도 때려 쳤겠다, 서울생활도 슬슬 지겨워지더라고.

일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고. 걍 바깥바람 한번 쐬고 오고 싶더라고.

마침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일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간다면서 애 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데?

그래서 내가 조카 은임이를 애보기로 일본에 보내면서 나도 같이 따라가는 조건을 불렀는데 그래도 괜찮데. 나야 좋지 뭐.

 

일단 도항서류도 꾸미고 일본에서 머물 체류비도 좀 마련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긴 했어. 그렇게 해서 흘러 들어간 곳이 일본 오사카야.

 

그러다 뭘 했냐고? 뭘 하긴. 잽싸게 일자리 찾아야지.

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어.

 

간단한 이력서를 제출하고 소식을 기다렸는데 좀처럼 일자리가 나오지를 않아.

근데 이것도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놈들이 소개비만 날름 받아 처먹고는 제대로 된 직장을 소개 안하는 거야. 심지어 가는 곳마다 퇴자를 놓더라고.

 

뭐 핑계야 무궁무진하지.

 

-학력이 좀... 모집공고에 학력이 중졸 이상이라고 했는데... 거 못 봤나?

-나이가 좀 많네? 우린 좀 더 어린직원을 찾는데...

-전에 서울에서 철도쪽 일을 했네? 우린 업종하고 전혀 안 맞아서...

-이걸 어쩌나. 벌써 채용이 끝나서 미안.... 어쩌구 저쩌구.

 

이래? 빡친다는게 바로 이런 말이야.

 

뭐 학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정규직은 하나도 없고 어쩌다 나온 일이라는 게 거의 다 나보다 어린애들 피 빨아먹고 버리는 알바 밖에 없어.

 

어때, 시대가 달라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지?

 

이거 뭐. 어디가나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말야.

해도 해도 이건 정말 너무하더라고.

 

조선에서 뜀뛰기 해보려고 일본까지 왔는데, 일본에 오느라 들인 본전은 고사하고 숙박비에 식비에 돈 나갈 구멍이 수도 없어.

이러다가는 엉뚱한 일본경제만 살려주다가 바로 길거리에 거지꼴로 나앉게 생겼더라고.

 

계속 취업이 안 되니까 다른 길을 알아봤지.

직업알선비조로 수수료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무료직업소개소로 돌아다녀 봤어.

 

-에이! 진작에 무료직업소개소부터 알아볼 걸.

 

막 후회가 밀려와. 마침 무료직업소개를 하는 시립직업소개소에 들락거린 지 얼마 안돼서 이런 광고를 봤어.

 

-고베 철도 우편국 열차계 대모집!

 

대박! 눈알 튀어나온다는 게 바로 이런 거지.

 

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두고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.

잽싸게 이력서를 넣었더니 호적등본하고 신원보증서가 추가로 필요하대.

그래서 가뜩이나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조선에 있는 우리 집에다가 연락을 넣었어.

 

-최대한 빨리 호적등본과 신원 보증서를 여기 적힌 일본주소로 보낼 것!

 

. 나 정도면 철도국 경력도 되겠다. 이젠 뭐 합격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. 그치?

마음도 전보다 훨씬 홀가분해졌어. 그동안 일자리 알아보느라 엄두도 못 냈던 술도 한잔 사서 마시고 그랬어. 간만에 여유 좀 부려봤지 뭐.

 

근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하나 터지더라고.

허겁지겁 부족한 서류를 모아서 다시 제출했더니 쓰윽 훑어보면서 한다는 말이 참 가관이야.

 

-이게 사실은, 다른 지역에서 모집하는 공고가 잘못 나가서...

-그럼 진작에 말을 해 주던가! 처음부터 말이 안 되잖아. 말이!

 

미안하게 됐고... 어쩌고저쩌고, 사무적인 말만 무한반복을 하는데 완전기분 잡치더라고.

 

-이건 뭐 사설이고 공설이건 간에 제대로 직업 소개하는 데가 하나도 없어!

 

에이. 글렀다 싶어서 다시 사설 직업소개소에다가 지난 일을 쏟아부으면서 한소리 했더니 웬걸? 슬쩍 이런 말을 꺼내.

 

-정 그렇게 힘드시면 조선인 전용 직업소개소로 가시는 게...

-아니! 지금 당신들 짜고 나한테 이러는 거요?

-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?

-아니. 이것들이 진짜 사람을 우롱하네. 쉽게 말해! 내가 조선인이라서 그런 거 아냐!

-아니,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닌데...

아니긴 개뿔.

맨날 애꿎은 추가서류 떼와라 뭐해라. 거의 될 것처럼 말해서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병신이지. 이런 식으로 불쌍한 조선인 구직자들 구전을 빨아먹고도 모자라서 고작 한다는 말이 뭐? 조선인 전용 직업소개소도 있으니 그쪽 가서 알아봐라?

확 다 날려 버릴까보다!

 

생각 같아서야 다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럴 수가 없더라고.

꼭 누군가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만 같았어.

 

-어이. 이봉창이. 여긴 일본이야. 조선인이면 알아서 기어야지.

 

여하튼 내가 직접 몇 번을 당해보니까 말야. 일본의 직업소개니 알선이니는 도저히 믿음이 안가더라고.

 

요새 같으면 컴퓨터나 다른 걸로 직업을 찾아보는 것도 쉬워졌다지만, 그 때는 그런 것도 하나 없었어. 신문 구직란 정도가 고작이었거든.

 

-그래, 이번에는 신문 구직란을 파보자!

 

, 이쯤 되면 구직활동을 떠나서 그냥 생존문제야.

신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그럴싸한 광고가 하나 보이더라고.

 

-발명상품 외판원 모집!

 

아싸! 이제야 뭔가 되려나?

내가 어렸을 적부터 물건은 꽤 팔아봤잖아. 일본인 단골들도 주인보다는 항상 나만 찾았고. 사람 사귀는 거라면 나름 자신이 있었어.

. 재능이라면 사람사귀는 것 밖에는 없지만.

 

근데 이번에도 그놈의 이력서가 마음에 걸려.

조선 사람이라고 또 물먹는 거 아닌가 싶어.

사람이 말야.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점점 쪼그라드는거야.

이런 기분. 정말 더럽지.

 

어쨌거나 이번에는 아예 안 된다고 각오를 하고 갔는데 덜컥 취업이 되더라고.

 

-원래는 안 되는데... 내가 조선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 해서...

-정말 고맙습니다. 목숨 바쳐 일하겠습니다!

-허허. 목숨까지는 됐고, 그냥 열심히만 해주게.

 

마침 비상금도 거의 다 떨어져가는데 살았다 싶었지 뭐.

이제 멀쩡한 직장도 생겼겠다.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탈탈 털어서 취직한 그날부터 물건을 팔러 다녔어.

 

간만에 신났지. 연말이라 일자리도 거의 안 나올 때였거든.

어쨌거나 한달만 일하면 다시 새해가 올 거고, 이젠 돈 걱정하면서 배고픔에 시달릴 일은 당분간 없겠다 싶었지. 그렇게 월급날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면서 손님 하나 더 잡으려고 구두밑창이 갈라지도록 뛰어다녔어.

 

근데 또 일이 터지고 만거야.

월급 때가 됐는데 돈이 안 나와서 따졌더니 서무직원이 회사 돈을 들고 그만 튀어버렸다는거?

 

이게 처음부터 월급 떼어먹으려는 수작이었는지... 아니면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고, 미안하다며, 어쩌다 이렇게 됐다면서 담뱃값이나 하라고 몇 푼 쥐어주는데 기가 막히더라고.

그래도 난 명색이 서울 용산사람이 아닌가.

어렵게 취직까지 시켜준 사람한테

 

-야이, 개자식아!

 

이럴 수는 없잖아.

 

-, 어쩔 수 없죠.

 

이러고 말았지.

 

. 참담해.

연말이고 연초고 뭐고 폭삭 망했어.

 

잠깐만! 또 뭔가 취조한답시고 우르르 몰려와.

아쉽지만 내 얘기는 다음에 또 할게.

 

어차피 갇혀있으면서 할 일도 별로 없고 이렇게 검사랑 마주 앉아서 썰이나 푸는 거지 뭐.